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두 탈북여성
후원자님 안녕하세요.이제 보름 후면 2025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26년 새해가 우리를 맞겠지요. 2025년 남은 동안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는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시기를 기원합니다.지난주 중국 현장에서 2명의 탈북여성 구출 요청을 받고, 즉시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이 여성들의 구출 자금을 모으려고 합니다. 1인 비용은 1,530만 원으로 두 명이면 3,060만 원입니다.한 여성은 북에서 여군 고사포부대 출신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자살을 시도하다 중국으로 밀려온 여성이고, 또 한 여성은 노동자 가족으로 천대 받는 국군포로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인 탄광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이 여성들이 아무리 중국에서 오래 살아내도 법적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다면 이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요?이 두 여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라고 했지만, 그곳이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잠시뿐이지요. 하루빨리 중국을 떠나 안전한 제3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후원자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꼭 도와주셔서 이 해를 넘기지 않고 여성들이 마음 놓고 우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여성들의 삶입니다.
탈북여성들의 삶입니다.
1. 김OO 40대 여성, 2009년 탈북우리 가정은 군인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국경경비대 특무상사로 근무했는데 내가 15살 때 아버지를 따라 양강도 백암으로 이사하면서 그곳에서 살다가 17살에 군대 들어가서 고사포부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인 19살에 어머니는 사망했습니다.월급이 없을 때가 많았지만 소위 군관으로 1,000원을 받으면서 7년을 근무하다 주민과 군인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군인정신에 말리다가 머리를 각목과 돌에 맞아 뇌출혈이 와서 왼쪽 다리에 마비가 오고 한 달 동안 말을 못 했습니다. 평양에 있는 11호 병원에서 치료받고 복귀했으나 근무에 어려움이 있어 강제 제대를 했습니다.제대 후 직장이 백암군 군당에 배치되었는데 직장까지는 한 시간씩 걸어서 다녔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훗엄마가 도시락을 안 싸줘서 힘들게 일하러 다니며 살았습니다. 그후 직장을 옮겨 체신소에서 1년 교환수를 하다가 방송원도 하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그만두었습니다. 이때 약혼도 했는데 약혼자의 조카가 물에 빠져 죽는 일로 내가 그 집에 들어온 후 재수가 없다고 하여 파혼하고 다시 남자를 소개받아 갔다가 그 남자가 나를 때린다는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와서 결혼을 안 시킨다고 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급히 오느라고 내 당증을 놓고 온 것을 알고 다시 가지러 갔다가 그 남자가 휘두른 도끼로 머리를 맞아서 죽을 뻔했습니다. 5일을 피해 치료받고 있다가 집으로도 도망왔습니다. 그후 27살에 아버지 사망으로 훗엄마의 핍박으로 삼촌과 이모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그렇게 3년을 집 근처와 친척 집 등을 다니며 돈벌이하다가 더는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남동생이 군 제대 후에 여자 친구와 신파에 가서 잣을 따서 돈을 벌자고 해서 산속에서 잣을 땄습니다. 잣 판 돈을 가지고 이모 내로 가기로 약속하고 잣 딴 것 반을 팔아서 80만 원이라는 큰돈을 마련해서 혜산 역전에 왔는데, 남동생이 잠시만 여관에 가 있으라고 해서 있었는데, 주인이 여관비를 내라는 소리에 도망쳐 아직 팔지 못한 잣을 팔려고 신파에 가보니 동생이 이미 잣을 몽땅 팔아치우고 여자 친구와 도망간 겁니다. 동생에게 속았고,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그때가 4월이었는데, 아직 눈이 쌓여있을 때여서 추웠습니다. 나흘 동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길가에서 자고 나서 억울하고 신세가 한심해서 높은 언덕에서 3시간을 펑펑 울었습니다. 장교 출신인 내가 스스로 한심하여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고 싶어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낭떨어지로 떨여졌습니다. 실신 후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니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서 죽지 않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다가 압록강에 떨어지면서 얼음이 녹지 않은 강물 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그때가 4월 25일이었어요. 강물이 너무나 차가워 얼어 죽지 말아야겠다고 먼 곳에 집이 보이는 불빛을 향해 뛰어갔는데 조선족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분들이 옷 주고 고등어에 쌀밥을 주었는데 너무나 맛있어서 지금도 맛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밥과 옷을 주고는 공안들 조사 다닌다고 빨리 나가라고 해서 집을 나와 무작정 걷는데 짐차가 와서 탔는데, 가다가 내리라면 다시 내리고 걷고 다 또 걷고 다시 차를 얻어 타고 해서 한 달 만에 청도라는 낯선 도시 주변 시골에 도착했습니다. 청도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큰 도시까지 살아온 겁니다. 그 과정에 배고픔과 수치는..... 울음.....청도 근처 농촌집에 말려놓은 강냉이밭에서 마른 강냉이 대를 깔고 지쳐 잠이 들었는데, 오토바이가 와서 타라고 해서 탔는데, 배고프다고 하니 빵을 사 줘서 먹고 그 남자를 따라갔습니다. 그 집에 가자마자 1달 후에 임신이 돼서 지금은 16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신분을 속이지 않았고 한국에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체육특기생인 아들에게 돈도 많이 들고 주변에서 공안에서 엄마 신분을 자꾸 물어서 중국에 머물기가 힘들었습니다. 요즘 아들이 아프고 학교 학비도 부족하고 엄마가 힘들다고 하니까 한국 가서 엄마 자유 찾으라고 그동안 우리집을 위해 너무나 고생했다고 한국에 가서 자유롭게 살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남편은 가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절대로 돌아오지도 말고 다시 자기를 찾지 말라고 단호히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맘대로 하라고 해서 큰 배신감을 가지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가는 선을 찾으려 많이 노력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때까지 한국도 못 가고 힘들고 억울하게 살았습니다. 도와주시는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2, 최OO 50대 여성, 2001년 탈북우리 가족은 탄광 마을에서 사는 노동자 가정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탄광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가사를 하셨습니다. 형제는 언니 4명과 오빠가 하나가 있었고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 직업을 따라 주원 탄광에서 운전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기 사정이 어려워 탄광이 돌아가지 않게 되자 월급과 배급이 안 나와서 먹고살기 힘들었습니다. 탄광에는 국군포로들과 가족들이 일했는데 이들은 우리보다 더 어렵고 천대받고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국군포로가 있었는데 거의 쓸쓸히 죽어갔습니다.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강냉이 장사를 시작했는데 남양 국경에 갔다가 군대와 조선족에게 속아서 강제로 강을 넘었다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2001년 가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수모를 당하며 울고 울었지만, 어떤 방법도 없어서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습니다.엄마와 형제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리워서 울면 주먹으로 답을 해주는 인신매매단 앞에서 숨죽이고 며칠을 살다가 길림시에 조선족 남자에게 팔려 갔습니다. 시골 산골에 가난했지만 잘살아보려 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암으로 죽었습니다. 아이가 두 살 반 때 남편이 죽자 혼자 아이 키우며 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동네에서 북한 여자라고 천대받아도 억척같이 아이를 키웠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며 북한에서 나를 기다릴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도 남에게 안 보이려고 산에 가서 조선 쪽을 보며 울고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그 딸이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죽은 남편 동생이 나이 들어가는 나를 남자를 소개해 주어서 그 남자와 살았지만, 늘 불안한 생활이었습니다. 근래에 남한에 갈 수 있다는 선을 알게 되었고, 연락이 닿았습니다. 중국에서 서럽게 살며 평생 그리던 한국에 가서 남은 인생 열심히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꼭 도와주세요.
꼭 도와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 잊을 수 없습니다.
두 여성이 하는 말 두 손 모으고 “꼭 도와 달라고....”남은 인생 열심히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살기를 원하는 여성들입니다.이 여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늘 감사합니다.2025년 12월 15일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난민구호사업단단장 이미숙, 부단장 엄영선 김영자, 컨설턴트 이성주 김은주 오세혁 김혁 올림<후원계좌>국민은행 533301-01-050592 북한인권시민연합우리은행 142-097009-01-201 북한인권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