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실상

[증언] [증언]북한에서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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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의 생존기
- 조·중 국경지역의 밀수

증언_지금옥
2014년 입국

편집 |윤영일 지원팀 매니저
삽화 | 안충국 탈북화가

밀수와 장사의 길

저는 2014년 대한민국에 입국한 지금옥입니다.
북한에서 54년을 살아오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다 겪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아픔과, 인권유린을 당하였고, 그 정권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사라지고 분노와 억울함을 해소할 길 없었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부터는 식량 공급과 급여가 끊기면서 1996년부터 수많은 아사자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1997년부터 북한에서는 식량 공급과 월급여가 지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사망한 남편을 대신하여 가족을 지켜야 했기에 밀수와 장사의 길에 나섰습니다.
먹고살기 위한 전쟁 같은 그 수많은 사연 속에서 국경경비대원들에게 맞아서 피를 흘리던 그날 밤의 이야기를 간단히 하려고 합니다.
2010년 어느 가을날 중국에 넘겨 보낼 염소와 개(식용)를 15마리 사놓고 국경경비대 카바군(나의 밀수를 도와줄 경비대 군인)을 찾아가 새벽 2시에 밀수를 진행하기로 약속을 잡고 중국대방(중국사람)에게도 연락을 했습니다.

경비대의 총탁

중국에서 염소와 개를 무게로 가격을 쳐주기 때문에, 염소와 개에게도 먹이를 많이 먹이고 목줄도 단단히 묶고 만단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가 좀 지나자 중국 쪽에서 밀수를 하자는 불빛 신호가 왔습니다. 봄순이 엄마하고 둘이 경비대가 비워준 구간으로 염소와 개를 끌고 뛰어나가서 중국에서 넘어온 줄에 염소와 개들을 달아 묶는 작업을 하려고 어두운 강바닥에서 중국 대방이 보낸 줄을 찾고 있는데, 저 위쪽에서 다른 구간 국경경비대원이 “서라” 하고 소리치며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위급한 상황인데 우리 카바군은 나서질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소리치며 뛰어오는 그 군대가 현장에 도착하면 총창으로 염소, 개를 무자비하게 다 찔러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고 저와 봄순이엄마는 다음날부터 일푼도 없는 꽂제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할 사이도 없이 “봄순아, 빨리 보내라” 하고 소리치고는 뛰어오는 경비대원을 향해 마주 달려갔습니다.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그 커다란 경비대원을 끌어안고 더 가지 못하게 붙잡았습니다. 경비대원과 몸싸움에서 저는 쓰러졌고, 쓰러지면서도 경비대원이 더 가지 못하게 그의 두 다리를 끌어안고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사이 봄순이 엄마는 염소와 개들을 줄에 달아서 강으로 밀어 넣기 시작하였고 중국 사람들은 강 중간까지 들어와서 끌기 시작하여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경비대 군인은 악에 차서 소리 지르며 아직도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는 나를 총탁으로 내려쳤습니다.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하더니 몸이 하늘로 붕 떠가는 느낌이 들면서 쓰러졌고, 뒤이어 봄순이 엄마가 달려와 깨울 때, 얼굴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을 그때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중대부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군인은 우리를 쌍말로 욕하면서 중대부 대기실에 처넣었습니다. 불빛이 환한 구류장에 들어가서야 치아 3대가 빠지고 윗입술이 찢어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얼굴은 호박처럼 부어오르고 통증으로 밤새껏 죽을 만큼 아프지만 약 한 알 없고 병원도 갈 수 없고...

참으로 슬픈 밤

우리는 그 밤에도 자신들이 당하는 탄압과 인권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돈을 살렸다는 것으로 안도했었습니다.
철저하게 폐쇄된 국가에서 사람으로써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생각하지 못했고 당에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으니 ‘매를 맞아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중대에서 보위부로 넘길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침에 출근한 중대장께 그냥 좋은 말로 사정사정하고도 많은 돈을 고이고(주고)야 그다음 날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북한땅에도 인권의 빛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험한 땅에서 내 가족을 지키고 살아남으려고 모진 모욕도, 창피함도, 억울함도 참아가면서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나라에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게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장사하지말라, 밀수하지말라” 하면서 탄압만 하는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하루빨리 북한땅에도 인권의 빛이 비추어 그곳에서 사는 우리 형제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도 누리고 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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