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실상

[증언] [증언]자유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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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증언_이*빈
2019년 7월 25일 탈북
2020년 2월 21일 입국

편집 |윤영일 지원팀 매니저
삽화 | 안충국 탈북화가

저는 북한에서 온 이*빈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북한은 악의 축이고 망종의 나라라고 알려져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세계여론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힘든 보위부 생활
제가 북한 혜산에서 살고 있었던 2014년경 아들이 중국에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약속하고 나갔는데 중국의 로반 중국어로 사장을 ‘로반’이라고 함
이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아서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싸움이 일면 공안에 잡혀가고 북송될 것은 뻔한 일이기에 한국에 먼저와 있던 언니에게 연락하여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해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생활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아들에게 전화하려고 산에 올랐다가 신고로 2017년 5월 5일에 보위부에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동행자가 내가 아들에게 전화하려고 동행했다고 하여 결국 구류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구류장에서 다음 날 아침으로 푹 퍼진 강냉이 반 종지에 멀건 소금국에 시래기 몇 오리가 있었고 숟가락은 대가 없었습니다. 나처럼 잡혀 온 사람이 3명이 있었는데 과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식사를 하나 보니, 강냉이 한알 한알 입 안에 넣고 껍데기를 뱉고 그렇게 먹는 것을 보고, 전날 새벽부터 먹지 못했던 나는 이왕 들어온 것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지나간 일이 스쳐 지나간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들과 딸의 사진이 눈앞에 떠오르고,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마

음이 복잡하였습니다. 그날 저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다 보안소로 이송되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저녁에 잠을 자는데 패딩을 입고 있었으나 북한의 5월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한잠도 못 자고 담요 속에서 덜덜 떨며 하룻밤을 지냈고, 다음날이 되니 밑으로 자꾸 흐르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계호에게 위생대를 좀 달라고 했더니 “야 이간나 너 몇 살인데 아직도 위생하냐” 하기에 “자궁근종이여서 그런다”고 말하니 위생대를 두 개 주었습니다, 위생대를 가졌으나 세 시간에 한 번씩 갈아대야 하는데 말릴 수가 없어서 씻어서 배에 차고 말렸다가 갈아대곤 하였습니다.

북한도 무서워하는 세계여론
보위부 구류장 생활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오전에 한번 운동시간이 있는데 그것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발을 펴는 것이 운동시간이었습니다. 10분 그렇게 이틀간 앉

아있으니 무릎이 쑤시고 다리를 잘 펼 수조차 없었으며 반항할 수도 없는 처지다 보니 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한 명이 잡혀 왔기에 ‘오늘은 그래도 좀 따뜻하게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신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밤이 되니 계호가 머리를 서로 반대편에 놓고 자고 간격은 한 미터 떨어지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계호가 지나가자 우리는 서로 발을 부둥켜안고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3일이 지나자 예심원이 나를 불렀고 내가 머리를 숙이자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하여 웬일인가 하였습니다, 그때는 내가 학교 선생이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유엔에서 사찰단이 왔던 것이었습니다. ‘아! 이들도 세계의 여론을 무서워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2014년 6월에 딸이 중국으로 가다가 잡혀서 보위부에 들어가 숱한 매를 맞고 나와서 한 달 동안 악몽에서 헤매는 것을 보고 듣고 했었습니다. 거기서는 도저히 머리를 들 수 없으며 걸어도 90도 각도로 굽혀서 간다고 하였는데 유엔에서 사찰단이 오니 그 행동이 정지되었던 것입니다. 8일째 불려 갔을 때는 과자를 주면서 먹으라고 하기에 ‘배가 안고프니 안먹겠다’고 하니 ‘너 아직 생각이 많구나’ 했습니다. ‘먹어야 하나’ 생각하였지만 별로 먹고픈 마음은 없었습니다. 자식들 생각을 하니 배고픔도 추위도 더는 나에게 고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가지 내가 무사히 나갈 수만 있다면 ‘이 땅에서 살지 않으리라, 죽어도 탈북해야 한다’라는 한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보위부에서 받는 고문보다 감시속에서 살아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

돈이면 살인자도 처벌받지 않는 무법지대
10일 만에 보안소로 이송되었고 거기는 보위부보다 좀 나았지만 26명이 빼곡히 앉았는데, 나는 신입이다 보니 변기통 옆이 내 자리가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니 점검을 하면서 한명 한명 불러 죄명을 말하게 하고 자리가 앞으로 나가게 되었지요 “야 너 이간나 너는 어떻게 들어왔어?”라고 하면 109(백공구_그루빠, 북한 정권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자본주의 영상물(주로 한국, 미국)과 불법 출판물, 라디오와 녹화기 단속을 목적으로 2004년 2월에 조직한 사상, 미디어 통제 검열 조직이다._출처: 나무위키)라고 답하면 “야 이간나 저 뒤로 들어가”하고, 또 마약이라고 하면 뒤로 들어가 하더니, 전화건은 그중에서도 경하였던지 앞으로 전진했하였던 것입니다. 먹는 것은 강냉이 한 종지를 가지고 3~4명이 둘러앉아 먹었지만 별로 배고픔도 없었고 그저 빨리 나가야 한다는 오직 한 생각뿐 다른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보안서는 그래도 보위부보다 나아 조금씩 감시가 없을 때는 발도 펼 수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안서에서 20일간 있다가 단련대로 옮겨졌고 단련대에 있다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잡혔다고 아들에게 연락이 닿아 돈이 왔던 것입니다. 한 달에 400원(중국돈)씩 계산하여 주고 나와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단련대로 가서 내가 도망가지 않고 있다는 점검을 받았다.
보위부, 보안소, 단련대 기간은 짧았지만,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알게 되었고 돈만 있으면 살인자도 살아나온다는 것을, 법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오니 감시가 더 어마어마하였고 밤 12시가 되면 집의 문을 두드려 나가보면 없고, 아침이면 우리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가 보고, 거래를 위하여 어디를 가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정말 그 생활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어요. 내가 잘 아는 보안원이 있었는데 나를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내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가는 곳마다 감시가 따르고 있는데 내가 살 곳이 어디냐고, 이 땅에서 내가 살 곳은 감옥이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라고, “이럴 바에는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고 없어져야겠다”라고 하니 다른 말은 더 못하고 안된다는 소리만 했습니다.

탈북을 위해 우선 딸을 중국에 인신매매로 보내고...
브로커를 찾는 일도 힘이 들었고, 더구나 딸을 두고 올 수도 없었고 하여 2018년도에 딸을 먼저 중국 인신매매로 보내면서 먹으면 죽는 싸이나(청산가리)를 쥐여주며 “가다가 잡히면 다시는 이 땅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이 죽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잡히면 그 고통이 죽기보다 더하기에 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자식을 보내고 ‘무사히 중국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라고 소식이 오고서야, ‘이젠 내 차례구나’ ‘조금씩 준비를 해야 겠구나’하고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30리이기에 갔다가는 그곳에서 2-3일간씩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내가 없어져도 마을에서는 학교에 갔겠거니 하고 학교에서는 거래를 위하여 출근하는 걸로 알테니까요. 그렇게 1년을 준비하고 브로커가 나타나서 2019년 7월 25일 압록강을 넘어 2019년 9월1일 라오스로 오게 되었고 2020년 2월 21일에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정권의 종말을 위해 모든 탈북민은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고발해야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만약 북한을 떠나면 북한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용기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아직도 북한에 가족이 있기에 망설이다가 오늘에야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북한의 생활은 코로나로 인하여 더 열악하고 주민들은 더 힘든 에 있다고, 물가가 올라가고 아사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소리를 높여 저 북한을 고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한 명이 부르짖는 소리는 약하지만 탈북민 전체가 부르짖는 소리는 세계를 움직이고 북한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유엔에 발맞추어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입시다.

♦ 작품설명_보위부에서 받는 고문보다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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