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군 “우리는 왜 한국에 주둔하는가”, 탈북민과 대화
편집 | 우광호 지원팀 부국장
지난 6월22일 미공군 오산기지를 탈북민 4명과 북한인권시민연합 실무진 3명이 방문했다. 약 2시간 동안 미공군장병 200여명을 대상으로 탈북민 4명의 탈북과정과 한국정착생활에 대한 질의응답 형식으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이런 탈북민과 대화시간을 갖게 되었는지
지난해 초 호주ABC방송에서 탈북민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우리 시민연합에 연락이와, 탈북민 여러명을 소개, 이들의 탈북과정과 한국에서의 적응과정, 그리고 북한인권실상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이내용이 방송으로 나가게 되었고, 호주ABC방송의 탈북민 인터뷰내용을 주한미공군장교단이 시청하게 되었다.
장교단은 한국에 주둔중인 미군간부와 병사들이 근무기간동안 “왜 자신이 이땅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명감이 없이 시간만 보내고 귀국하는 상황을 염려하면서, 한국에서의 주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탈북민과 대화시간을 요청하였다.
현장분위기는
작년의 성공적인 성과에 올해는 규모를 좀더 키워 작년 대화시간에 참여하지 못했던 미군장병 200여명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참여탈북민은 총 4명으로 북한군 정치군관 1명, 고사포부대 여군중사 1명과 민간인으로 밀수와 장사 등의 경험을 가진 2명으로 구성했다.
이들중 북한군출신 2명이 북한군생활, 탈북동기와 과정, 한국정착에 대해 각자 15분정도 발표했고, 이어서 질문에 4명의 참여자가 답하는 형식으로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나이든 부모, 어린 자녀와 같이 도강하는 탈북과정의 이야기에 안도와 안타까움, 감사의 시간으로 변했다.
한국에 정착하여 평택에서 생선구이집을 운영하는 탈북민에게는 미군들이 가게에 한번 찾아가겠다고 하는 등 한국생활 얘기에는 모두 즐거워하는 시간이 되었다.
북한군출신 2명의 탈북과정 등 증언
#1. 박00(북한군 소좌)
이렇게 미군장병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뵙게 된 것을 영광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북한이라는 독제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니, 이런 자유를 만들어 주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지켜 주는 우리 대한민국 국군장병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먼 미국 땅에서 우리나라에 오셔서 자기들 나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주는 심정으로 우리를 지켜 주는 미군장병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땅에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 어릴 때부터 당한 그 세뇌로 17살에 북한군에 입대하여 20년간 총대로 김씨왕조와 그 체제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각오로 충성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형이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왔고 그것이 반역죄가 되어 연좌제로 군복을 빼앗기고 군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저의 자식들은 반역자의 조카로 온갖 멸시와 감시 속에, 미래의 꿈도 희망도 다 꺾이었기에 더는 살 수가 없어 탈북하여, 2010년 자유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탈북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당시 74세 아버님과 3살, 9살 난 두 아들을 데리고 탈북하였습니다. 저의 결심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형을 통해 브르커들과의 교섭을 마친 후 부조리문화로 되어있는 북한체제에서 장교생활을 하면서 받은 뇌물들을 북한군 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지불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압록강 국경을 무사히 넘게 되었습니다.
중국대륙에서 기차와 버스를 통해 공안의 눈을 피해가며 브로커의 인도에 따라 태국을 넘는 국경까지 왔으나 라오스 군인들에게 잡혔습니다. 다행히 군인들이 라오스 산속에 버려 고마운 라오스 주민을 통해 한국대사관과 연결이 되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대사관에 대기하고 있다가 난민으로 인정받은 후 대한민국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 교육시스템에 따라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를 걸쳐 17살에 북한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입대하여 전사(한국군 계급으로는 이병)로부터 부소대장 상사로 즉 북한군에서는 이것을 하전사복무라고 표현하는데 이 생활을 인민무력부청사(한국으로 표현하며 국방부청사)에서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들을 경호하는 인민무력부청사 경무대에서 하였습니다.
이후 하전사생활을 잘 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계급사회인 북한체제에서 대대로 충성하여 온 저의 계급적출신을 바탕으로 하여 북한군 정치장교들을 양성하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에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4년간 교육을 받은후 중위계급으로 졸업했습니다. 이후 총참모부 동부지구경무대 정치지도원으로 배치받아 2006년까지 북한군을 당적으로 감시 및 통제하고 그들을 김씨왕조와 그 체제에 충성을 다하도록 세뇌시키는 장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앞선에 말씀 올린 바와 같이 친형의 대한민국에 갔다는 반역죄로 군에서 제명되었고 이후 함경남도 함흥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탈북을 결심하고 오늘은 이렇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2. 조00(북한군 고사총부대 여군)
저는 김일성 3대 세습을 30여년 동안 체험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7년간 군생활을 하였고 4년제 대학교 졸업 후 탈북전까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4년간 국민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보면서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조00입니다.
저는 2003년에 입대하여 2009년까지 7년간 14.5mm 고사기관총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당 간부가 꿈이어서 군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당 간부가 되려면 군복무가 우선이고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2년이상 교수경력을 갖춰야 하기때문에 보통 남자는 15년이상, 여자는 12년이상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북한에서의 군생활은 남자들도 버티기 힘들어하는 생활인데요, 여성들도 군복무 마감까지 악으로 버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군의 생활은 참으로 열악하고 혹독하기 그지없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기본적인 환경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북한군의 실상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건 기본이고 옥수수밥과 소금에 절여 저장해두었던 야채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입니다.
제가 다루었던 포는 14.5mm 고사 기관총이였고, 총 6명(분대장,조준수, 조척수, 장탄수 2명, 운전수)이 한 개 분대입니다. 손이 꽁꽁 얼어 터지는 혹독한 추운 날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무더운 여름에도, 전시에는 적의 총알이 여성들을 피해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혹독하게 훈련받았습니다. 전시를 대비해 분대 6명도 다루기 힘든 포를 북한군 용어로 다번수 훈련이라고 하면서 혼자서 포를 다루게 하는 그런 강도 높은 훈련도 강행하였습니다.
여름에 전군이 1개월간 수영훈련이 있는데, 제일 싫어하는 훈련중의 하나입니다. 남군은 1,000m, 여군은 500m가 목표인데 그 목표를 수행할 때까지 물에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익사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곤 합니다. 힘들어 탈진하여 사망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군에서는 발표를 준비운동을 제대로 안하고 물에 뛰어 들었다고 하고 별다른 수습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생활 속에서 매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인하여 훈련 도중 쓰러지는 군인들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 오늘날 북한군의 실상입니다.
이러다보니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 어려운 시기를 체험한 세대로서 조국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경력을 위해 군생활을 하는 군인들이 다수가 되게 된 것이 바로 북한군의 실상입니다.